민주당 박선숙 사무총장의 인터뷰에서 올슨의 이론을 처음 접했습니다. (인터뷰 기사) 그 인터뷰를 읽으며 저에게 남은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어떻게 조직된 소수를 이길 수 있을까?
분명 서민들이 압도적인 다수이건만 조직되지 않은 그들은 조직된 소수 이해집단의 권력과 영향력을 견제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리와 재산을 반복해서 침탈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수렴이다.
비록 조직되지 않더라도 대중의 의지가 수렴되어 집중된 여론을 형성하면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렴은 이루어지기가 쉽지않고,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조직된 소수는 이러한 수렴을 막기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수렴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한때 대중들은 다음의 아고라에 수렴의 구심점 역활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상충되는 여러 의견들이(그것들이 누구에 의한 것이든 간에) 어떠한 논리적 발전도 이루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려버리자, 온라인 토론은 무력화 되었고 아고라의 구심력은 약해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 나꼼수가 출현하기 전까지 한국사회는 별다른 구심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꼼수는 “특정한 인물들”로 이뤄지는 구심점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정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국 탄압과 흑색선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흔들리면 전체의 수렴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나꼼수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나꼼수만으로는 적지않은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죠.
이 문제에 대해 의외로 간단한 솔루션을 소개합니다.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대중들이 아고라에 모여들었을 때, 아고라에서 이루어진 토론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하고 수준미달의 논리를 퇴출하며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논리적 발전을 이루어내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두각을 나타낸 논객들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해서 사회의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지속해 왔다면, 그렇게 그들이 구심점이 되어 대중들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수렴해왔다면 어떠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지금과는 적지않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게시판 시스템의 간단한 변화로 이러한 과정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에 있습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인 주장으로 평행선을 달려버리면 결국 이도저도 아니고 유야무야되어 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 조직된 소수는 조직되지 않은 다수의 토론을 무력화 시킵니다. 하지만 게시판 시스템 자체가 결론이 나는 토론을 강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견 별다를 것 없고 허술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별로 빈틈이 없는 솔루션입니다. 부디 일차적인 직관으로 “별거 없네.”하지 마시고 꼼꼼히 따져봐 주시길 바랍니다.
개요: 인터넷상의 토론공간을 단계별로 나누고, 논객들의 게시물들에 대한 평가점수(평점)의 평균을 유저점수로 삼아 이를 기준으로 상위 토론장으로 승격하거나 하위 토론장으로 강등당한다
- 이를 통해 성숙한 논리를 펼치고 논리적 발전을 도모하는 논객들은 높은 평점을 바탕으로 상위 게시판으로 승격하고, 편협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이들은 퇴출된다.
-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상위게시판은 검증된 논객들의 토론장이 된다.
- 상위게시판에서 점수가 기준점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강등된다.
- 게시물에 대한 점수는 해당게시판에 글을 쓸 수있는 유저들만 줄 수 있다.
- 게시물들의 평점횟수가 글의 질적 수준과 상관없이 높거나 낮을 수가 있으니 평점의 합계가 아닌 평균을 기준으로 삼는다.
- 모든 게시판들은 읽기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 이러한 단계별 토론공간을 중복으로 만들어 상위게시판에서 더 상위게시판으로 승격이 가능하게 만든다.
-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게시판 구조
i. 기본 게시판 – 열린 토론공간
ii. 1차 게시판 – 최소한 인신공격과 사실왜곡은 사라진 게시판
iii. 2차 게시판 – 성숙한 논리력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토론이 기대되는 게시판
iv. 3차 게시판 – 지혜를 갖춘 이들의 등대와 같은 역활이 기대되는 게시판
이제 이러한 게시판이 조직된 소수의 사보타지(sabotage)나 카르텔(cartel)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수치는 임의적인 것이니 당연히 바뀔 수 있습니다.
- 처음 등록한 유저는 당연히 기본게시판에만 글을 쓸 수 있다.
- 처음 등록한 유저에게 하루동안 허용되는 게시글, 댓글, 평점주기의 횟수는 3회로 제한된다.
- 유저점수가 올라감에 따라 허용횟수가 늘어나고, 내려가면 줄어든다.
- 유저점수가 특정치 이하로 떨어지면 제재가 가해져 일정기간동안 읽기만 가능하다.
- 상위게시판은 모두 무제한이며 승격과 강등으로 이 모든 역활이 대체된다.
- 게시물의 평균 점수는 상위 10%와 하위 10%를 제외한 나머지 평점들로 계산된다.
- 최소한의 일반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 20명 이상의 평점이 있어야 점수가 반영된다.
- 상위게시판 참여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한 달안에 하나 이상의 글을 올려야 한다.
평점의 점수대역을 피겨스케이트의 GOE처럼 -3에서 +3점으로 가정해 봅시다.
전체 평점의 평균이 기준이기때문에, 조직된 소수의 밀어주기가 -2점짜리를 -1.5점으로 만들수는 있어도 -2점짜리를 +2점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숫자가 일반유저들의 수를 넘어서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게다가 허용횟수의 제한때문에 자신들의 글을 밀어봤자 하루에 3개밖에 못 밀어줍니다. 자신들이 좋은 글을 올려 유저점수를 높이지 않는 이상말입니다. 그들이 좋은 글을 올리면 그걸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런 상황이라도 소수 몇명은 상위게시판으로 진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글을 쓰지않으면 자격이 박탈되니 글을 쓸 수밖에 없고 낮은 평점을 받아서 강등당하지 않으려면 막무가내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마 좋은 글의 평점을 조금 낮추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눴던 분은 아무리 이렇게 해봐야 첨예한 이슈에 대해 감정적으로 자극하면 와르르 무너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예를 하나 들어 봤습니다.
상위게시판에서 A가 B에게 감정적으로 인신공격을 했습니다. B도 화가나서 감정적인 글로 대응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두 사람의 게시물들이 기준점 이하의 점수를 얻었습니다. (설마 상위게시판에서 이런 글들이 높은 점수를 받지는 않겠죠.) 이게 반복되면 유저점수가 더 낮아져 하위게시판으로 강등됩니다. 이후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요?
스포츠에서 한쪽팀이 거칠게 반칙 플레이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팀도 같이 거칠게 플레이 할까요? 현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약 시스템이 파울 누적에 따른 불이익, 퇴장등 반칙플레이를 확실하게 징벌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반칙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자멸하게 될테니까요.
이게 바로 시스템이 강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조직된 소수를 이기게 하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의 조직에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검찰도 80%의 검찰들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다만 20%의 권력에 줄선 앞잡이들이 전횡을 일삼아서 문제입니다. 바로 조직된 소수들이죠. 이것은 관료사회나 교육계등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일 겁니다.
이러한 조직내에서 잘못된 점이 있을 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겁니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대중은 소극적입니다. 누군가 바른 소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완장 찬 앞잡이들의 공격이나 물타기에 압도되어 버립니다. 대다수의 소극적인 대중은 자포자기가 되죠. 결국 행동하는 의인들은 포기하거나 조직을 떠납니다.
SNS의 중요한 기능은 소극적인 대중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만들어 준다는 점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없던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좀 더 용기를 갖게 만들고 연대하게 만들어 주는거죠.
조직내에 민주주의2.0 형식의 게시판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평점을 통한 승격시스템은 SNS와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게시판에 입바른 글을 올린 사람이 앞잡이들에게 공격 받는 건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전자의 글이 높은 평점을 받고 후자의 글이 낮은 평점을 받는 순간 전자는 그 이상의 어떤 서포트가 없어도 압도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압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극적인 대중들 또한 간접적으로나마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걸 알게 됩니다. 이게 반복되어서 전자는 승격하고 후자는 강등되거나 시스템의 제재를 받게 되면 이미 끝난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여론이 조직의 방향성에 영항을 줄 수 있게 된다면, 분명 작금의 세태와 비교해서 조직되지 않은 다수가 조직된 소수를 이긴 모습이 아닐까요?
이 예제를 쓰면서 자꾸 통합진보당이 생각나네요.
수렴의 구심점, 검증된 논객들로 구성된 상위 게시판
이렇게 구성된 상위 논객풀(pool)은 그 자체내에서도 끊임없이 자정이 일어납니다. 권력이 뽑은 몇몇 논객들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자리를 놓지않는 모습과 다르게, 수준미달의 논리를 펼치면 실시간으로 평가받고 누적되면 퇴출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속가능한 구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덧붙여 이러한 시스템이 공신력을 얻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운영자가 절대로 게시글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중의 수렴된 의견(평균점수)로 판단되어야 합니다. 평균점수가 지나치게 낮은 글은 블라인드 처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낮은 평점을 가격표처럼 달고 있는 글인 만큼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2.0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기존의 정치권이나 압력단체들과는 별개로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의 가능성을 대중들의 자율적인 토론과 의견수렴에서 발견하고 꿈을 꿨던 시스템이었습니다. 대중들의 수렴된 의지가 실시간으로 정치권에 전해지고, 그들의 행태에 대한 대중의 판단 역시 바로 피드백 되는 세미직접민주주의,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2.0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시하는 이 솔루션이 민주주의2.0을 향한 또 하나의 걸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별로 평점 받지않고 가볍게 글쓰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겁니다. 논객들도 언제나 심각한 글만 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평점시스템이 없는 자유로운 게시판 공간을 따로 마련해둬도 좋을 겁니다.
그 외에도 해결되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사소하게는 오래된 글에 사람들이 평점을 주는 문제, 충분히 평점을 받고 나서 글의 내용을 바꾸는 문제등등... 제 나름의 아이디어는 있지만 그런건 각각의 개발자들에게 맞겨도 될 것 같습니다.
아고라를 비롯한 여러 CMS개발자분들께서 이러한 솔루션에 대해 한번쯤 숙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름 꽤 오래동안 생각해왔던 아이디어라 이 외에도 적지않은 디테일들과 향후 응용전략들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개발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이메일(synawe@wecandiscuss.com)을 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많은 분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져서 훌륭한 솔루션으로 완성되길 바래봅니다.
The genie is out of the bo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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