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리얼예능 속의 캐릭터들

시나위 2021. 9. 26. 13:36

2009년 11월에 쓴 글을 복구했습니다.

 

리얼예능을 좋아하는 나에게 무한도전을 필두로 활짝 열려진 리얼예능의 시대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평과 비판, 호평과 혹평들은 참 많은 사유의 소재를 준다.
리얼예능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웃고마는 개그예능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에 쓸데없이 사유하는 것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 맛좋은 간식같은 것이다.

앞서 쓴 리얼 예능속의 꽁트와 드라마에서는 내용적인 면으로 여러 방송들을 짚어봤었는데, 그동안 또 다시 사유가 흘러흘러 최근에는 캐릭터의 관점에서 각 방송들의 차이점을 짚어보게 되었다.

리얼예능이 그냥 웃고마는 예능이 아니라면 개그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나는 바로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는 그 공감을 바탕으로한 감동까지도 욕심낼 수 있다. 무릎팍도사 같은 스튜디오 예능도 충분히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지만, 지금은 그 차이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지금 방송되는 다양한 리얼예능프로들의 차이점을 집어보는 기준으로써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캐릭터하면 캐릭터쇼의 선두에 서 있는 패밀리가 떴다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캐릭터는 딱 두가지이다.

바로 예능캐릭터 다큐캐릭터이다.

예능캐릭터가 프로그램의 웃음포인트를 잡고 있다면, 다큐캐릭터는 공감과 감동을 맡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의 구별은 칼로 베듯 잘라지지 않고, 자주 한사람에게 공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이 두가지 잣대를 가지고 하나하나 분석해 보겠다.

먼저 12일에는 김C를 제외한 5명이 예능케릭터를 가지고 있고, 김C는 확실한 다큐캐릭터다. 제주도 국도여행에서 5시간동안 도보여행을 하며 그려내는 영상은 전혀 웃기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게 만드는 리얼예능의 공감과 감동의 진수로 보여진다. 웃음포인트는 다른 5명의 출연자들이 차고 넘치게 잡아준다. 물론 그들 또한 수시로 다큐적인 공감과 감동을 만들어준다. 예를들면, 시민들속으로 서슴없이 걸어들어가 어린아이를 번쩍 안아드는 강호동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흐뭇하다. 그리고 12일에는 최고의 다큐캐릭터가 있다. 바로 제작진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출연자들을 척박한 리얼상황으로 내몰며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시청자가 방송속에서 그들의 역활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기에 하나의 총체적인 캐릭터로 받아들여진다. 때로는 이들 스스로가 카메라속으로 들어와 연출되지 않은 리얼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70명 야외취침은 바로 그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라이벌인 패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미리 밝힌다면 난 두주전부터 더이상 패떴을 보지않는다. 하지만 패떴이 2주만에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면 내가 하는 이야기에 현재성이 전혀없지는 않을 것이다.

패떴에는 다큐캐릭터가 없다. 출연자 모두가 예능캐릭터이거나, 예능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제작진마저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다큐케릭터를 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나는 패떴을 리얼예능으로 생각하고 무척이나 실망해왔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패떴을 시트콤형 야외버라이어티로 생각한다면, 패떴은 무척 잘만들어진 프로그램이고 한편으로는 장르의 개척자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시청자를 상대하는 제작진의 태도와 끝까지 리얼예능이라고 우기며 고집하는 모습이 눈쌀을 찌뿌리게 만들지만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무한도전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예능의 대세인 리얼예능의 효시이며 확고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무한도전에서 다큐캐릭터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감동에 있어서 12일마저 넉넉히 따돌리고 있는 무한도전에서 그 감동을 꼭집어 어느 출연자에게 이입하기가 쉽지않다. 무한도전에서 출연자들은 기본적으로 예능캐릭터인 것이다. 그렇다면 감동을 만들어내는 다큐캐릭터는 누굴일까? 나는 김태호피디를 필두로 한 제작진에게 시선이 향한다. “무한도전은 김태호피디의 이야기다.”라는 어느 블로거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유재석도 김태호피디가 만들어놓은 큰 틀안에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진행자일뿐, 강호동처럼 제작진들과 협상을 통해 새로운 상황을 창출해가지는 못한다. 그나마 정형돈이 아파트청소와 이사하기, 하하와 친해지기 등으로 다큐를 만들어냈지만, 그것도 정형돈이 스스로 다큐캐릭터를 방송속에 녹여냈다기 보다는 제작진의 기획으로 끌어내어졌다고 보는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그 와중에 전진은 예능도 다큐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모습에 머물러있다가 군대에 입대하며 하차했다.

그 다음은 남자의 자격”을 보자. 이정진은 무한도전의 전진쯤의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윤형빈은 처음에는 이정진과 함께 있었지만 요즘 점점 예능캐릭터를 잡아나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다음으로 김국진은 확실한 예능캐릭터다. 지금부터 남자의 자격이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이경규는 다큐와 예능 모두 확실하게 잡고있다. 30년 경력의 예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진솔함이 묻어나게 망가지는 모습으로, 때로는 그를 극복하는 모습으로 희화되거나 진중한 다큐 또한 거침없이 그려낸다. 다음은 다른 어느 예능에도 없는 부분이다. 바로 김성민과 김태원. 분명 다큐캐릭터다. 개그맨도 아니고 예능의 배테랑도 아니다. 그냥 자신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낸다. 근데 그게 곧바로 개그다. 스스로 다큐캐릭터지만, 그 다큐가 바로 개그다. 다큐캐릭터이기에 원래 감정이입이 쉬운데, 그 다큐가 이경규보다 더 웃긴다. 돈주고도 못사는 캐릭터들이다.

최근들어 김태원이 락커의 카리스마를 쉽게 놓아버리지 않는 탓에 약간의 부조화스러운 모습이 때때로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은 대수롭지 않게 보인다.

다음으로 천하무적 야구단을 짚어보겠다. 천무는 사실 별로 집어볼게 없다. 한민관과 허준이 예능캐릭터인것을 제외하고는 야구경기라는 주어진 상황에 의해 모두가 다큐를 그려낸다. 회가 거듭할수록 몸을 내던지며 몰입하는 출연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가능하고 다큐가 수용이 된다. 가끔 예능도 하려고 노력하지만 제대로 웃음포인트를 집어내는 사람은 한민관과 허준정도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막 시작한 청춘불패를 짚어보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단 김신영과 남희석이 개그맨 출신답게 예능캐릭터를 잡고 있다. 노주현과 김태우는 어중간한듯 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들을 이어주는 촉매역활을 해주는 것 같고, 결국 중심은 G7, 걸그룹 아이돌 7명이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다큐캐릭터다. 한두번 웃길수는 있겠지만 웃음포인트를 확실하게 잡아챌 수 있을만큼 경력있는 예능인들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다큐는 상큼발랄하다. 10대후반에서 20대초반의 젊기보단 어린여자들, 거기에 왕언니 하나. 이들이 재잘재잘거리며 그려내는 자신들의 진솔한 다큐는 그 자체로 명랑하고 즐겁다. 웃길수도 있지만, 안웃겨도 보기 좋고 흐뭇하다는 것이다.
다만, 청춘불패는 언뜻보면 패떴과 많이 닮아있다. 매주 시골로가서 집안일 바깥일 저녁식사라는 패턴을 반복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점이 있다. 디테일한 연출이 없이 큰 포맷안에서 출연자들을 방임하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치리 주민들이 쉽게 카메라안으로 들어와서 꽤나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또 하나의 리얼예능이다.

예능이 프로그램의 본질인 웃음을 형성한다면 다큐는 그 중간중간에 시청자들이 숨쉴 수 있는 여백을 준다. 그 여백속에 채워진 공감과 감동은 시청자로 하여금 한시간이 넘는 시간을 TV앞에서 배꼽잡고 구르고 난 뒤에도 공허함에 쌓이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준다. 공감과 감동은 더이상 예능이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TV앞에서 방정맞게 웃어대는 백수들의 무능함과 유치함을 그려내는 소재로 사용되지 않게 만들어준다. 이것은 여러 스튜디어 예능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방송가의 예능파워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리얼예능은 결국 이 다큐와 예능의 적절한 버무림이 관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면에서 12일은 가장 균형잡힌 예능과 다큐의 조화를 가지고 있는듯 보이며, 남자의 자격과 청춘불패의 앞으로가 또한 기대된다. 반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무한도전은 언제까지 김태호피디의 경이적인 능력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인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에 비해 패떴은 피디가 스스로를 리얼예능으로 규정하는 정체성에 대한 자아분열을 일으키지않고, 진작에 시트콤형 버라이어티로 정체성 확립을 할 수 있었으면 시청률이 20% 밑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실존과 인식간의 괴리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막으로 이어진다. 별로 감동적이지도 않고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 자신을 감동적인 휴머니스트로 착각하며 쏟아내는 알맹이 없는 과잉 정서는 당연히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연출에 상관하지 않고 시트콤형 예능을 즐기는 결코 적지않은 시청자층이 꾸준히 어느 정도의 시청률은 유지시켜주겠지만, 다시 뛰어오를수 있는 원동력은 보이지 않는다. 떠난 이들을 불러모아 반등하기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지금으로선 막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