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15년 3월 20일에 팟캐스터 서비스 팟빵의 지대넓얕 후기에서 저(지대뉴비)와 말라도님의 토론을 지속한 글입니다. (지대넓얕 후기)



일단 독실님이 아니라고 하니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불교사상에 어느정도 기반을 둔 사유를 지향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두겠습니다.

 

일단 지대넓얕은 제목 그대로 주제들을 넓고 얕게 건드려보는 방송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온 방송의 내용도 그러했구요짧은 시간에 거대한 주제를 얕게 다루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깊게 들어가면 힘들어 집니다.



일단 주제의 근원이 되는 뿌리부터 줄기, 큰 가지정도까지만 훝어보고 그에 대한 토의만 진행해도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겁니다근데, 독실님의 경우 자신에게 불편한 주제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격적이고 지엽적인 질문들을 쏟아내며 주제에 대한 큰줄기를 전체적으로 건드려보는 것 자체를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경우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도 어렵고 진짜 중요한 부분에 대한 토의는 시도도 못해보고, 아쉬움이 남는 에피소드가 되고 맙니다.


반면 다른 출연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체를 조망하고 큰줄기를 짚어보려 함께 노력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독실님에게 불편하지 않은 주제나 독실님이 진행하는 에피소드는 내용이 알찬 경우가 많습니다.

부족한 시간에 거대한 주제를 얕게 건드려보는 방송에서 질문과 반론도 일단 큰 맥락을 건드려보는 것이 먼저일 겁니다.


 

또한, 반론과 질문에 있어서도 적지않은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강요되지 않은 주인의 도덕을 이야기 할때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아야한다는 명제에 반박하는 모습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한사람의 사상가가 펼쳐내고 한세기동안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사상은 보통 그가 저술한 책으로로 온전히 다 표출될 수 없기에 수많은 연구와 2차문헌이 생겨납니다. 그러한 사상을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 문장으로 줄였는데, 딱 그 문장만 문자 그래로 가져와 배경과 바탕의 모든 사유는 거세한 체 그 문장을 공격합니다.


그 어떤 언어화된 관념도 그런식의 프레임에 넣으면 오류가 됩니다. 세상의 어떤 사상, 종교의 주장도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그걸 박제해버리면 모두 극단적인 헛소리가 됩니다.


우리가 한두문장으로 된 명언에 감명받고 공감하는 것은 그 문장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은 주변적 가치와 관념을 자연스럽게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사상을 타인에게 설명할 때 상대방이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면 쉽게 비교가 가능할 겁니다.


사실 이런식의 반론이 드문건 아닙니다.


반대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것에 대한 심리적 기재로 사람들이 논의를 이런식으로 몰아가는 현상은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프레이밍에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논박하지 못하기에 논의를 공전또는 왜곡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정치등의 이해관계가 얽힌 토론에서는 의도적으로 많이 쓰이는 방법이구요.


아니나 다를까 채사장과 깡선생도 제대로 논박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거세된 주변적 가치를 보충설명을 하기위해 애쓰며 힘들어 하더군요.


하지만 이것은 결코 올바른 담론의 태도가 아니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극복되어야 하는 기재입니다.


특히나 그것이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다수에게 들려지는 공적인 영역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극단적인 예제를 통한 반론 또한 그렇습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알아보려한다면, 근원이 되는 뿌리부터 몸통이 되는 줄기, 큰가지, 작은가지를 거쳐며 주제에 대한 탄탄한 이해의 바탕을 만든다음 지엽적인 부분이나 예외적인 부분을 들여다 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겁니다.


하지만 독실님은 자신이 불편한 주제에 대해 대뜸 극단적인 예제를 바탕으로 반론합니다. 바로 사이코패스의 주도적인 삶이라는 예제입니다.


니체는 강요된 도덕, 노예의 도덕에 머무르지 말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것을 주장했다.


위키피디아에서 니체에 대한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여기에 사이코패스가 들어갈 여지가 어디에 있나요?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처럼 스스로 주도적인 삶이라 할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주변적 가치를 거세하고 문장을 박제함으로써 그걸 사이코패스라는 극단적인 예제로까지 연결시킵니다.


극단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한 예제는 언제나 어렵습니다. 어떠한 사상이나 종교도 그런 지점에 이르러서는 의견도 분분하고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에서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할 때 대뜸 쉽게 결론도 나지않는 극단적인 영역부터 논의하고 싶을까요?


하지만, 이 또한 드물지 않게 목격되는 심리적 기재이고 부정하고 싶고 반대하고 싶은 주제에 대한 논의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상대방도 예제자체를 논박하다가 논의가 공전되고 말기에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효과적인 방법이며, 역시 정치등의 이해관계가 얽힌 토론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올바른 담론의 태도가 아니며 극복되어야 하는 기재입니다.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독실님은 이 사람은 그냥 다 깐거잖아. 그냥 반기독교인이네, 2병같네.”등의 발언을 통해 반복적으로 니체를 폄하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이러한 심리기재를 뉘앙스의 문제로 덮습니다. 주장하는 뉘앙스가 독단적이다, 겸손하지 못하다등으로 말이죠.

 


이 지점에서 저는 정말 불편했던 한 부분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어느 에피소드에선가, 성철스님의 마지막 법문에 대해 무척이나 심각한 왜곡를 단정적으로 언급합니다.


평생 거짓말만 했다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문장하나만 그대로 박제해서 불교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참 화도 나고, 기가 막히는 사유와 인식입니다.


불교에서는 문자화된 관념을 극복하라는 가르침이 그 주를 이룹니다.


석가는 열반직전에 내 평생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부처가 무엇입니까? 똥작대기다.”라는 법문은 누구나 들어봤을 만큼 유명하고, 불입문자 직지인심이라는 법문또한 널리알려진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거세하고, 성철스님의 문장하나만 박제한 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또 단정해버리는 모습은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이고 타인에 대한 폭거였습니다.


스스로의 이러한 모습은 돌아보지 못하고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철학자의 주장을 두고 뉘앙스와 겸손을 따지는 모습은 너무도 미숙한 자아의 표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팟빵등의 후기를 보면 독실님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칭찬이 많이 올라옵니다.


90년대 초반 PC통신 시절부터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의 담론을 격어오고 있는 저로서는, 그러한 칭찬의 상당부분이 독실님과 종교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의견표출이라는 확신을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그들로서도 불편한 주제에 대한 공격이 오히려 반가울겁니다.


하지만 독실님 자신을 위해서도 좀 더 객관화된 관점을 지향해 보길 권해드립니다.


역지사지에 대해 한번만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대넓얕: 니체편에 대한 지속논쟁 (독실님 귀하)  (0) 2015.03.20
Posted by synawe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