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진보의 여론형성력이 보수를 이길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처방

시나위 2021. 4. 1. 12:02

2012년 12월 8일에 썼던 글입니다.

약간의 수정을 거쳐 복구했습니다.


승부에는 주도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바둑에서도 또는 스타크래프트같은 실시간 전략게임에서도 게임을 자신이 원하는 양상으로 끌고가기 위한 주도권싸움은 아주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해 본다면, 게임을 초반 전략을 통한 난전으로 끌고갈지 운영을 통한 자원전으로 끌고갈지 등의 선택이 그럴것이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패턴으로 판을 짜기위해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펼친다.

이 때 한쪽은 전체 상황의 맥점을 간파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놓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것도 없이 맥점을 간파하고 있는 쪽이 큰 저항없이 요소를 차지하며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가지고 게임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상대편은 자신이 내어준 요소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점차적으로 패퇴하게 될 것이다. 게임이 안풀린다는 불평만 내뱉으면서...

지금부터 보수가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여론형성의 주도권을 가져갔는지 찬찬히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해에 나꼼수를 주제로 진행된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보면서 무릎을 쳤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방청객 투표인단 시스템이었다.


당시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토론주제에 대해 시작전에 투표인단들에게 찬반투표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후 다시 찬반투표를 실시해서 시작전의 투표결과와 비교해 어느쪽이 더 공감가는 토론을 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지금부터 이러한 투표인단 시스템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분석해 보겠다.

매주 멀쩡한 사람들이 나와서 두시간동안 토론을 벌이는데 단 한번도 결론이 안납니다.

방송3사가 매주 진행하는 각종 토론 프로그램을 두고하는 말이다.
토크콘서트에서 김제동이 한 이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었다.

한국에서 나름 명망있는 사람들이 출연해서 한 회에 두시간정도 매주 세번씩 토론을 펼치는데 어떻게 해서 단 한번도 결론이 나지 않을까? 중학교 학급회의도 이보다는 생산적일 것이다. 중학생들도 한시간정도 회의하면 최소한 몇가지 합의사항은 도출해 낸다. 결론은 젖혀두고서라도 최소한의 방향성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들은 모두 바보들인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야 우리는 익히 모두 알고있다. 모두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자 하고싶은 말만 하기 때문이다. 열린질문을 가지고 최선의 답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답을 정해놓고 논의를 그쪽으로 끌고가기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는 논리와 사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없는 평행선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보수는 게임의 맥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무조건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라!

토론이 불가능해지면 가치판단이 불가능해진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왜곡된 논리들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듯 물타기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어떠한 토론도 접점이 없는 평행선으로 만들어 버리고, 온라인에서는 인신공격이 난무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토론자체가 의미없는 것,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대립은 선전을 통한 세몰이 싸움으로 갈 수 밖에 없고, 세몰이 싸움에서야 자본력과 기득권을 바탕으로 월등한 화력(선전력)을 갖춘 보수쪽이 유리한 건 불보든 뻔하다.

이것이 바로 보수가 원하는 게임의 모습이고, 지금의 한국사회는 이미 그들이 원하는데로 판이 짜여졌다.

그러한 토대위에 2007년 대선에서는 부도덕해도 유능한 리더가 더 낫다라는 프레임이, 또 MB정부 인사청문회에서는 윤리선생 뽑는 것 아니다라는 프레임이 실제로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토론의 부재로 생긴 가치판단의 공백을 우세한 선전력을 활용해 이렇게 왜곡된 가치들로 마음껏 채우고 있다.

그렇기에 보수의 전략은 왜곡된 가치를 홍보하라 이전에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라가 우선된다.

정보를 약품에 비유한다면 불량약품을 유통하기 전에 약품의 유효성을 검사하는 식약청 품질검사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마비시키라는 것이다. 그로인해 불량약품들을 아무런 제재없이 유통될 수 있게하기 위해서... 또한 자본력과 기득권을 바탕으로 유통기관들도 점차적으로 장악해 나간다.

되돌려 말하면 토론이라는 검증의 과정이 없기에 정보들의 유효성여부가 제대로가 판별되지 않는 틈으로 왜곡된 정보들을 유통시킨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공식적인 정보유통기관인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비공식적 유통기관인 온라인도 자본력을 바탕으로 장악해 나간다.

그에 비해 진보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토양 위에서 진실된 정보를 유통하라는 전략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주어진 정보의 유효성여부를 가릴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는데 올바른 정보를 전달받은 이는 그 정보의 유효성을 어떻게 확인할까? 진보가 쏟아내는 정보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보수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일베같은 사이트가 성행하며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하는 원인이고, 또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도 주변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죽도록 힘든 이유이다.

다시 말해 지금 진보가 펼치고 있는 전략은 불량약품 유통에 맞서 좋은약품을 더 많이 유통시키겠다고 전력투구하고 있는것이다. 이미 힘에서 절대적으로 밀리는 유통기관 싸움에만 집중하면서 식약청 품질검사기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말이다. 오히려 품질검사기관만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면 저들이 유통기관을 아무리 장악해도 불량약품은 유통되기 힘들어 질텐데... 그리고, 올바른 정보의 유통을 토대로 저들의 유통기관 장악도 점차적으로 바로잡아 나갈 수 있을텐데 말이다.

진보는 게임의 맥점을 놓치고 있고, 보수는 게임의 맥점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토양에 대해 미세하나마 균열을 만든 것이 끝장토론의 투표인단 시스템이었다. 다시말해 식약청 품질검사기관이 조금이나마 작동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언제나처럼 서로에게 유리한 말만 쏟아내는 토론이 끝난 후 실시되는 방청객들의 투표결과는 미약하나마 방향성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에게 토론에서 쏟아진 정보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당장은 일회성으로 지나가겠지만, 이게 오랜시간 축척되면 유통되는 정보는 조금씩 정화될 수 밖에 없다. 거짓과 진실이 마구 뒤썩여 제대로 판단하기 힘든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미약하게나마 어느쪽이 좀 더 유효한지의 방향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보수는 만만치 않았다.

최근에 개편한 끝장토론에서 방청객 투표인단 제도가 사라졌다.
토론은 또 다시 끝없는 평행선만 달리게 되었고, 식약청 품질검사기관은 unpowered 상태로 되돌아갔다. 한국사회의 권력을 거의 대부분 장악한다는 게 결코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란걸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진보영역에서는 이러한 끝장토론의 변화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게임의 맥점을 놓치고 있으니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식약청을 되살리지 않고 유통으로 싸우려 하는이상 진보는 결코 보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보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싹을 잘라버리겠다고 나선다. 끝장토론을 폐지하겠다고 덤비는 것이다. 언제나처럼 투표인단 부활등의 어떤 불안요소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아니겠는가?

보수가 끝장토론을 폐지하겠다고 덤비는 상황에서 제작진도 투표인단을 부활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방통위가 법해석을 꼬투리삼아 움직이는데 시청자들이 요구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럼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일까?

이하 내용은 제가 근래에 쓴 글의 링크로 대체하겠습니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가 정리한 해법을 한번만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바둑에 비유해본 사회적 담론 시스템 해법